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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이런저런일

보이스피싱에 8분이나 통화한 사연

by 티런 2009. 8. 28.




오후시간대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서울 도심쪽 전화번호.
아무런 의심없이 전화를 받아봅니다.

"여보세요"
" XXX씨 핸드폰입니까?"
"맞습니다만,누구십니까?"
"아.. 놀라지 마시고 전화를 받으셔야합니다."
"네?"
"여긴 서울지방경찰청 XXX형사입니다."
"... 무슨일이시죠?"

먼저 신상을 확인해야한다며
내 주민번호랑 주소를 먼저 불러준다.

"맞으시죠?"

평범한 소시민에게 형사가 전화왔다고 합니다.
갑자기 몇년간 내가 어떻게 살아왔냐..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 다름이 아니라.. 대포통장건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네? 대포통장이라뇨..?"

순간 대포통장이란게 내가 개설한게 아니라도 만들어질수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집니다.

"저희가 선생님에 혐의를 두고 전화를 드린게 아니라는점 먼저 알려드립니다."

이야기인즉, XX(지방도시)쪽에서 대포통장을 유통시킨 일당을 검거해서 수사중
300여개의 대포통장중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이 나와 전화를 했다고 한다.

차근차근 또박또박 사투리를 전혀쓰지않고 정확한 표준말을 구사하고
내 주민번호와 주소같은것을 정확히 알고 먼저 불러주는 상황...

본론(이체유도)으로 바로 유도하지 않고
장시간 정황을 무리없게 설명하는것에 이때까지 의심이 가지 않았다.

" 전 대포통장을 만든적도 구경한적도 없습니다.먼가 잘못된것 같은데요?"
" 아..이번에 검거된 일당중에 은행직원도 몇명 있습니다.
" 아무래도 그쪽에서 임의로 만든것 같기도 합니다."

" 이부분에 대해 몇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 지금 수사중 50여명이 생활고 때문에 대포통장을 개설해서 일당들에게 판 사실이 들어났습니다"
"가정주부나 회사원들도 있구요"

"선생님 같은경우엔 다른 혐의는 없습니다만.. 그런 상황(생활고도 힘들어하는...)은 아니시죠?"
"아닙니다. 전 그럴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5분여 넘게 통화한것 같고..
의심이 들 사이없이 그 사람의 대화에 이끌려갔다.

죄를 짓기보단 죄를 짓는 현장만 목격해도 가슴이 떨리는
소심한 일반시민에게 걸려온 경찰의 전화...

결과적으로..이끌려 갈수밖에 없었다.

" 혹시 XX은행이나 XX은행 구좌 직접 개설하신겁니까?"
" ....잠시만요...개설된 것은 있는데 오래되었습니다"
" 올해에 개설한적은 없으시죠?"
" 네.."
" 그럼 이거 지방에서 개설되었으니 대포통장이 맞네요.. 저희가 정지시키겠습니다"
"...."

이후 몇개의 은행계좌에 대해 물어본다. 
몇 차례 알아서 정지시켜준다.

" 선생님 주로 사용하는 은행이 어디신가요?
" 그건 왜죠"

이부분에서 조금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대포계좌가 발견되는 대로 정지를 시킬예정입니다만.. 주거래 통장을 정지시키면 곤란해 지지 않겠습니까?"
"..."

이상해진다.
갑자기 몸의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이 상황이 진짜라도 이건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든다.

"선생님.. ?"
"네. 거기 서울지방 경찰청이라고 했죠?"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XXX형사입니다"
"전화번호가 핸폰에 찍힌 번호가 맞나요?
"네,맞습니다. 확인차 다시 불러드리겠습니다. XXX-XXXX입니다"

일단 더이상 물어보시는것에 대답할수 없을것 같다고하고
확인후 다시 전화를 드린다고 했더니....

"아,, 그러실것 같습니다.이해합니다."
"그럼 몇일뒤 소환장이 XXX(제가사는동네) 자택으로 도착할겁니다."
"소환장 받으시고 전화주시면됩니다.


이러고 전화를 정중하게 마무리한다.
(결과적으로 ..더이상 안먹히는것을 알고 범행시도를 그친것 같습니다.
아니면, 소환장이란 말을 듣고 조급해진 마음에 다시 연락을 할것을 대비한 포석인것 같기도 하구요)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전화를 이리 끊는걸 보면 진짜인것 같기도 하다.

'아...재수없이 누가 내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유통시킨것일까..'
라는 생각에 아무일도 할수 없었다.

바로 확인을 해야될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전화번호를 찾아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름이 아니라 몇가지 여쭤볼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런전화가 왔는데 혹 XXX 형사라고 계십니까?"

 "사기입니다"
전화기 넘어로 너무 빨리 경찰관의 대답이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XXX형사를 사칭한 전화가 많이 옵니까?라고 물으니
하루에 몇백통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해당 전화번호를 불러주니 사기가 확실하다고 한다.
....

주로 쓰는 계좌를 물어봤을때
대답하고 조금 더 이끌려갔으면 어떤상황으로 갔을지 모를일입니다.

물론 현금이체유도의 상황에선 당하지 않았겠지만..
신종 수법으로 저를 대한다면 참 어이없이 당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참 예민하고 의심많다고 생각한 제가 참 헛 똑똑이였나봅니다.

통화시간 8분여동안 보이스피싱이란 단정을 못내리고...
그날 참 어이없고 허무하고 바보같고..
그렇터군요.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전의 보이스피싱전화와 틀렸던 점을 몇가지 적어봅니다.

1. 주민번호와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2. 어눌한말투나 중국동포쪽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3. 이체를 유도하기위해 다그치지 않습니다.
4. 차분하고 편하게 대화를 장시간 유도합니다.
5. 속아 넘어가지 않아도 마무리를 참 예의있게 합니다.
6. 해당분야(사기내용)에 임기응변이 탁월합니다.


전화번호와 형사이름은 자주 바뀐다고 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이런전화를 조심하셔야하실것 같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도 이런 상황을 알려드려 주의를 환기시켜 드려야할것 같습니다.

보이스피싱이 전화번호 무작위 추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개인정보유출로 인하여 더욱 정교한 범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업체들.
정말 소중한 정보를 정말 소중히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