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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이런저런일

언젠가 쏜다는 친구의 천년약속

by 티런 2010. 4. 14.



어제 낮 전화기가 울려서 보니 '언젠가'라는 별명이 뜹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전화온 친구의 전화~ 반가운 마음에 얼릉 받아봅니다.

별명에서도 느낄수 있지만 "언젠가.."라는 표현으로 미래를 기약하는 스타일입니다.
학창시절 이 언젠가라는 멘트로 모든 술자리나 여행 회비를 피해가던 친구였었죠.

통화를 시작하며 제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왜?술 사줄라고 전화했냐?"란 다소 도전적인 표현.
이 말에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지..."라는 특유의 표현으로 응수하는 친구.

간만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운 통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친구의 여운이 아주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다소 황당했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납니다.


몇년전, 각자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뻐 얼굴을 못보던 친구들과 함께 지방에서 열린 결혼식에 내려갔습니다.
결혼하는 친구도 학교 동창인데, '언젠가'의 동향 친구입니다.
이 친구의 별명은 '힘만쎄'
뭐든 손에 잡으면 부러트리는 가공의 힘을 자랑하는 녀석입니다.
왜 그런지 예전에 한번 물어보니 어릴적부터 아버님의 과일가게에서 과일박스를 날라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학창시절부터 둘은 꼭 붙어다니며 티격태격...
항상 '힘만세'가 '언젠가'를 구박하며 끝나는 상황이었지만,둘다 적당히 즐기는것 같아, 보는 저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 친구들입니다.

장가를 가게된 '힘만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친구들.
중심가의 고기집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 오랜세월이 흘러도 편한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담날 결혼하는 힘만세는 몰려드는 잔을 이기지 못하고 별명에 어울리지 못하게 일찍 귀가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오늘 숙소는 어디냐고 물어봅니다.
"모르겠다.힘만세가 안잡아줬나? 말안하디?"
"나도 몰라... 근처 여관 잡아서 자지뭐"

이렇게 1차를 마무리하고 2차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합니다.
이때 불쑥 나서는 '언젠가'.

"아주 맛있는 치킨 호프집이 있어.거기로 가자~예약해 놓았다"
뭐..자기 고향도시니 그럴수 있다싶어 따라갔더니 대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립니다.

"어디로 갈려고?"
"응 택시타고 조금만 가면되~"
"뭘 맥주 먹으러 택시타고 가니? 사람이 열명이야~여기 여관도 많고 여기서 먹고 자자"

"나만 믿고 따라와...돈걱정일랑 하지말고..."
"..^..^!!!" 갑자기 일행들이 감격스런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 언젠가 쏜다는 그 날인가 봅니다.
"그래 가잣!"

택시 3대에 나눠타고 달리기를 30여분.
시골읍내 뒷변의 조그만 호프집에 택시가 멈춤니다.

"어라? 여기가 맛으로 승부한다는 그런 숨겨진 치킨집인가?"
조금 의아했지만,가게안으로 들어가봅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주머니 뒤로 조그만 테이블 4개정도가 보입니다.
가게 안 손님???...
예약을 해놓아서 그런지 아무도 안계십니다.전세를 낸것 같습니다.ㅠㅠ

주인 아주머니가 '언젠가'를 아주 반갑게 맞이합니다.
아주 친한가 봅니다.이모~이모 하면서 제법 살갑게 대합니다.

일부러 찾아올만큼 치킨이 맛있는거 같지도 않고, 분위기도 없었지만...
'언젠가'가 최초로 쏘는 날이기에...
메들리음악과 번쩍이는 장식전구를 보며 축제스런 이자리를 즐겨봅니다.


두어시간이 흘러 12시쯤.
'언젠가'가 취했는지 테이블에 엎드려서 자고 있습니다.
술값 계산하고 이제 자러 가자고 하며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자식 술값 안내려고 일부러 그러는거 아닌가?"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때~주방에 계시던 이모가 나오시더니 한말씀 하십니다.
"여전히 술이 약하네...삼촌들 좀 업어줄래요?"
"네..업고 여관으로 가야죠..."
"아니,업고 가게옆 골목 안집까지만 데려다 줘요"
"?..." 갑자기 상황판단이 안됩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말 안했어요? 우리집! oo이 이모집!"

친구 두명이 언젠가를 이모집까지 데려다 주는 사이...
긴급회의를 해봅니다.

"여기 치킨집이...진짜 이모집이었네...ㅎㅎ"
"그럼 술값은? 결국 우리가 내야하는건가?"
"설마,친 이모집인데..."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동안 '언젠가'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상황이 안좋게 돌아가는것 같아보입니다.
"언젠가...요녀석...결국 이 멀리까지 택시타고 데려와서...이모 치킨가게를 도왔구나ㅠㅠ"
"그럼 그렇지...한턱 낼 녀석이 아니야~"
"이모님한테 폐 끼치지 말고 계산하고 가자"
이렇게 결론을 내어봅니다.

집에 따라 가셨다가 돌아오신 이모님에게 술값 계산을 한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잠시후,가게안에서 나오시는 이모님손에 여관방 열쇠3개가 있습니다.
"아까 오기전에 전화와서,요 옆 여관방 3개만 잡아달라고해서 예약해 놓았어요.술값도 아침에 계산한다고 했으니 가서 쉬어요~"

"홋!!진짜 한턱 냇구나!!술값에 여관방3개까지 풀서비스롯!"

다들 흐믓한 맘으로 여관으로 들어가 기분좋게 잠을 자고 일어나서 결혼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언젠가'는 본가에 들렀다가 결혼식장으로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해피한 상황은 신랑과 축하인사를 하는 상황에서 뒤집어졌습니다.

" 먼길왔는데 내가 숙소를 못잡아줘서 고생했지...언젠가에게 술값이랑 숙소비를 좀 줬는데...어디서 잤니?"
허컥~~ 모든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 응..ㅠㅠ 이모 치킨집...그리고 숙소는 그 옆 여관.... "
" ㅋㅋ 내 그럴줄 알았다"
"그 여관도 친척분이 하는곳인데....ㅎㅎ"

결혼식,뒷풀이 내내 친구들의 구박이 이어졌고...
이날도 결국 "언젠가 쏜다~"라는 말로 지탄을 받으며 '천년약속'이란 별명을 하나 더 얻게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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