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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스런.나들이

시련을 딛고 일어선 낙산사를 가보다

by 티런 2012. 4. 6.


신라 문무왕때 창건돼 지금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온 낙산사를 다녀왔습니다.

몇해전 여름 낙산해수욕장을 방문했을때 낙산사를 올라가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올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여긴 아주 오래전 제가 초등학교 보이스카웃 시절에 일출의 장관을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곳입니다.그러니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낙산사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0여분을 올라가니 낙산사 입구가 있습니다.
사실 여행와서 여러군데를 다니다보면 주차료에 입장료~이 두 패키지에 사실 살짝 부담이 되긴 합니다만, 여긴 입장권을 끊으며 도장을 받으면 주차료가 면제되더군요^^;;
 

표를 끊고 보니 앞에 석문인 홍예문이 있습니다.
이 홍예문에 있는 누각은 다들 아시는 낙산사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1467년 세조때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한 산불에 대한 원망스런 맘이 다가오더군요.

'지혜로운 사람은 인색하거나 질투하거나 성내지 않는다'

살면서 이런 문구 자주 떠올리면 맘이 편해질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세상사이기에 기억속에 넣으려 계속 마음속에 새겨보게 되더군요.

 

보물 479호였던 동종이 산불로 소실되고 난후 복원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도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세조를 위해 그의 아들인 예종이 만들게 한 것이라고 하니 한숨만 나오더군요.



바로 이런 모습을 봤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입니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는데 2005년 낙산사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이 자리에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낙산사 화재는 모든것을 앗아간 비극이었던것 같습니다.

이 원통보전 바로 앞에는 낙산사7층석탑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손상된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탑의 상륜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낙산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수관음상을 보러 이동하던 길에 만난 조그만 돌탑들.
하나 하나 쌓을때마다 경이로운 기술이 펼쳐지는듯 하더군요.
하나 올리려다가 내 욕심으로 다른 사람의 공든탑까지 무너트릴까봐 자제했다는...^^;;

해수관음상의 모습입니다.
16미터의 높이로 만들어지고 낙산의 아름다운 바다를 내려다 보는 포인트에 서 있어서 그런지 그 자체로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것 같습니다.
1972년 착공되어 1977년 점안되었다고 합니다. 이 해수관음상을 이루고 있는 양질의 화강암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700여 톤을 가져와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해수관음상이 바라다 보는 낙산의 모습입니다.
참 멋지죠?


경치가 좋으니 바닷가를 내려다 보는 벤치에 앉아 복잡했던 마음을 비워봅니다.
바다란게 언제나 그렇듯이 머리 비우기엔 참 좋은것 같습니다.^^

소원을 빌며 조그만 연못에 동전을 던져봤으나...
사격실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꽝이더군요.ㅎ


해수관음상을 본후 내려가니 보타전이 있습니다.
보타전은 앞서 본 원통보전,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성지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임을 보여주는곳이라고 합니다. 한국 최초로 7관음상과 함께 32관음 응신상, 그리고 1천5백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타전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낙산사 경내가 쭉~~~펼쳐져 있더군요.
규모가 엄청났다는...^^



이렇게 산 하나가 다 낙산사니...
그 곳을 다니는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렸던것 같습니다.



이날 오랜만에 들러본 낙산사에서 느낀 바는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라고 할까요?
2005년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낙산사의 소중한 문화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지배적이었습니다.ㅡ..ㅡ



이날도 허전한 산에 나무를 심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뉴스보도를 보니 한 기업의 복지재단에서 주관한 대학생  자원 봉사단 400여명이 서울에서 이동하여 나무심기봉사를 펼쳤다고 합니다.
2006년 부터 지금까지 매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과 관심들이 합쳐져서 낙산사가 다시 이자리에 설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소중히 자리잡아 더 오랜 역사를 함께 했어야 할 소중한 문화재들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은 절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